[독서/메모] 모두에게 이로운 삶의 자세 / <나의 비거니즘 만화> - 보선
비건(Vegan)?
아, 풀떼기만 먹는 사람들?
육식하는 사람들한테 닭, 돼지, 소들이 불쌍하지도 않냐며 소리치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풀 먹는다 하는데, 풀은 생명인데 왜 동물은 보호하고 풀은 먹어도 돼?
나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시드니에 살면서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종종 길거리에서 비거니즘을 외치고 동물 해방을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는
'시간이 참 많은 사람들이네..'
'그럴 시간에 자기네들이나 잘 하지..'
'동물이야 불쌍하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다들 먹는데 뭘'
이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비웃었다.
바로 옆에서 목청껏 소리치는 그들을
가끔 개들이 짖는 것처럼 의미 없이 흘려 들으며 시끄러워했었다.
무엇을 외치는지, 왜 외치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가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가지를 알려 주더니, 어느 순간 슬쩍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다.
만화책이라, 읽기도 쉬워서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나 스스로도 느끼기에 내가 많이 변했다고 느낄 정도로 나를 바꾸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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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서는 비거니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를 포함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이는 것."
너무 당연하게 좋은 말 같은데, 과연 이것을 지키면서 살아왔는가 하면 아니었다.
심지어 때로는 나 스스로 조차도 존중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비거니즘은 나뿐만이 아닌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들을 존중하자는 삶의 자세이다.
모두가 비거니즘의 삶의 자세를 실천하면서 산다면,
당장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 이슈들이 거의 해결되지 않을까?
해결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마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이상향과 같은 세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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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회의적인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산다고 무엇이 달라져?
나만 이렇게 살고 다른 모두가 이렇게 안 살면 결국 바뀌는게 없지 않나?
이 질문을 룸메이트에게 말했을 때 그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봐봐, 너도 그 책을 읽고 비거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잖아?'
"행동의 주체가 '나'라면 폭력을 줄이기가 쉽다. 그저 폭력을 멈추면 된다.
동물들은 말을 할 수가 없어,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행동의 주체자인 인간이 행동을 멈추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행동을 고치는 그 순간, 하나의 폭력이 없어진다.
우유 대신 두유, 고기 대신 콩고기를 고르는 매순간이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가치가 있다."
책의 저자는 "불완전한 실천은 비실천보다 도움이 된다." 라고 했다.
나 스스로 이미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니 웃음이 났다.
"비인간 동물에겐 감정과 인지 능력이 있지만 도덕을 사유할 만큼의 능력은 없다.
그러므로, 호랑이나 토끼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는 도덕적인 선택을 할 '능력'이 있는 인간뿐이다.
그래서, 동물 해방 운동의 주체는 '인간'만이 될 수 있다."
길거리에서 비거니즘을 알리고, 동물 해방 운동을 외치던 시민들의 모습을 비웃던 내가 부끄러웠고,
그들은 이미 비실천보다는 불완전한 실천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거니즘을 알리고, 한 명이라도 더 불완전한 실천을 하면,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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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잠식되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지 말자."
"연민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회의의 감정일 뿐이다."
비거니즘은 결국 당연하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있었던 삶의 자세이다.
정말 단순한 삶의 자세이고 지키면서 사는 것도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하다.
고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고민을 포기하면 포기하는 만큼 훨씬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결국 추한 '꼰대'가 되지 않을까?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지도 못하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게 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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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육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책에서 소개하는 거의 대부분의 농장 이야기이다.
물론, 이렇게 키우지 않는 동물 복지 사육장도 있다지만 그 수가 정말정말 적다고 한다.
<닭>
부화한 병아리는 암, 수로 분류.
*수평아리는 살아있는 채로,
비료를 만드는 발효기에 똥과 흙을 같이 넣어
칼날을 돌려 통째로 함께 갈아서 비료로 만든다.
*암평아리는 좁아터진 닭장안에 우겨 넣어 평생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닭장은 인간이 달걀을 쉽게 수거하기 위해 20도 정도의 경사가 있다.
닭이 나이가 들어 알을 잘 낳지 못하면, 가공육 공장으로 팔려가 고기가 된다.
산란계의 삶은 부화 -> 사육 -> 도축인데, 중간 과정마다 도태가 있다.
도태란 성장이 더딘 개체를 죽이는 일인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아 내려치거나 목을 비틀어 죽인다.
이유는 피가 나오면 더러워지기 때문.
<젖소>
송아지가 태어나면 암, 수로 분류.
*수송아지는 소고기를 만드는 농장에 팔려 사육되거나 고기가 된다.
이 때, 고기가 될 송아지들은 좁은 우리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빈혈 상태를 일부러 만들기 위해 먹이를 충분히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기를 연한 색상으로 만들고, 식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다.
송아지는 약 16주 정도만에 성장 촉진제가 들어간 액체 사료를 먹으며
평균 41kg에서 181kg정도까지 살이 찐 후, 고기가 된다.
*암송아지는 12개월이 지나면, 강제로 임신을 시켜 젖이 나오게 만든다.
사람이 소의 항문에 팔을 쑤셔 넣어 그 안에서 자궁경관을 고정시킨 후,
수송아지의 정액이 들어간 긴 관을 질에 삽입 후, 자궁에 직접 주입시켜 인공 수정시킨다.
그 후 우유 산출량을 최대치로 만들기 위해,
조명, 사료, 온도 등의 모든 환경을 통제 받는다.
임신한 젖소가 10달이 지나 송아지를 낳으면 3일 정도 초유를 마시게 한 뒤, 송아지를 이별시킨다.
송아지에게 먹여야할 젖을 인간에게 팔기 위해서이다.
(이 송아지들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분류되어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출산 후, 1-2개월이 안에 다시 강제로 임신을 시키고, 젖을 짜낸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가, 우유 산출량이 줄어든 소는 도축장에 끌려가 고기가 된다.
<돼지>
*번식용 암퇘지들은 생후 210정도가 되면, 인공수정을 시킨다.
이후, 출산할 즈음 개별 격리를 하는데 그 공간이 굉장히 비좁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피부에 욕창이 생기거나, 태어난 아기 돼지가 어미에게 깔려 죽기도 한다.
출산 후, 아기 돼지에게 3주 가량 젖을 먹인 뒤, 다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약 7번 정도 출산을 하면, 생산성이 떨어져 고기가 된다.
*고기용 돼지들은 아기 돼지일 때, 꼬리를 마취 없이 잘라내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기 때문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송곳니 8개를 니퍼로 마취없이 뽑아내는데 모돈의 젖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수컷은 거세를 하는데, 수컷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마취 없이 고환 주위를 자른 후, 뜯어낸다.
생후 3주가 지난 아기 돼지들은 자돈사로 옮겨져 2개월동안 사육되는데,
환기 시설은 악취와 가스를 감당하기가 어렵고, 바닥은 배설물이 빠질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곳에서 성장이 더디거나 장애가 생긴 아기 돼지들을 도태시키는데,
다리를 잡고 바닥에 패대기치는 방법과, 망치나 렌치로 머리를 내리쳐 죽이는 방법이 있다.
이후, 비육사로 옮겨져 3개월간 사육되는데, 한 방에 돼지 10마리가 생활하게 된다.
공간이 비좁아서 휴식 공간과 배설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넓이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돼지들은 항상 오물에 뒤덮여 있는데,
첫째로, 배설물이 빠져야 할 구멍이 너무 작아서 돼지들이 뒹굴며 똥을 밀어 넣어야 빠지게 되기 떄문이고,
둘째로는, 방에 물이나 진흙 등 체온 조절을 위한 도구가 없어서이다.
돼지는 땀샘이 퇴화하여 진흙에서 목욕하며 체온을 조절하는데
방에 그 도구들이 없어 똥을 몸에 묻혀 체온을 조절하게 된다.
그렇게 생후 6개월이 되면 고기가 된다.
(돼지의 평균 수명은 10-15년이다.)
*도축장으로
돼지들은 낯선 환경에 두려움이 있어,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에 타지 않으려 하는데,
이 돼지들을 옮기기 위해, 철봉으로 찌르거나 전기 충격기로 충격을 가해 돼지를 옮기는 방법이 쓰인다.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도축 하기 전 기절을 시키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돼지 도축을 위해 특수 고안된 전기 충격기로 돼지 머리에 충격을 주어 기절시키는 방법.
둘째로, CO2 가스에 노출시켜 기절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방법 모두 성공률이 100%가 아니여서, 종종 의식이 있는 채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다음 단계는 '방혈'로 칼로 경정맥을 찔러 피를 빼는 단계인데, 이 과정에서 돼지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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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사육장에서 벌어지는 사육과 도축 과정이 충격이었고,
더 이상 고기가 고기로만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매일 먹었던 고기를 이제는 일주일에 한 두번정도로 줄였는데,
처음에는 그 한 두 번도 먹을 때마다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힘들어
그냥 다 포기하고 다시 매일 고기를 먹을까 싶기도 했는데,
고기가 고기로만 보이지 않아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다.
불완전한 실천이 비실천보다는 낫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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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비건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면서 알게 된 운동가가
일반 시민들과 길거리에서 토론한 영상들에서 발췌한 메모들이다.
공부를 많이 하신 것 같다.
동영상에서는 질문을 하자마자 답이 거의 바로 나온다.
여기서 C는 일반 시민들 J가 운동가의 답.
C: 식물도 생명이다. 왜 동물은 안되고 식물은 먹는가?
J: 식물은 뇌와 신경계가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다르다.
동물들은 감정과 인지 능력이 있다.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느낀다.
C: 육식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J: 그러면 강간과 살인은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C: 강간과 살인은 불법행위이다.
J: 그러면 노예제도는?
그 당시에는 노예들도 합법이었다.
합법이란 이유로, 모든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가 되지는 않는다.
C: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노예는 더 이상 합법이 아니다.
J: 지금 이 시대에 동물을 죽이는 것은 합법이다.
그렇다고 그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인가?
C: 우리들은 소비자로서 고기를 사 먹을 권리가 있다. 소비하고 싶다면 소비할 수 있다.
J: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합법적으로 노예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도덕적인가?
C: 인간의 몸은 육식하게 맞게 진화해 왔다.
J: 고릴라와 하마는? 초식동물이지만 인간보다 훨씬 더 큰 송곳니가 발달해 있다.
또, 우리 몸이 그걸 가능하다고 해서 그걸 선택할 필요는 없다.
C: 인간은 균형잡힌 식사를 하지 않아 건강이 나빠진다.
J: 채식만으로 충분히 균형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 왜 다른 존재들에게 고통을 주어야 하는가?